태풍 속의 울릉도 해안을 질주하다

글·사진 송철웅

입력 : 2011.12.06 13:29

도동~사동~태하리~현포령~ 천부리~석포리~도동 52.4km

1 울릉도 서쪽 끝 태하리 대풍감 부근의 몽돌해변에 밀려드는 커다란 파도의 스펙터클.  
2 현포 중간말의 취나물 밭. 이른 아침부터 김을 매고 있는 아낙에게 울릉도 취나물 맛이 궁금하다고 하자 아낙이 필자에게 취나물 잎사귀를 뜯어 건네주고 있다.
1 울릉도 서쪽 끝 태하리 대풍감 부근의 몽돌해변에 밀려드는 커다란 파도의 스펙터클. 2 현포 중간말의 취나물 밭. 이른 아침부터 김을 매고 있는 아낙에게 울릉도 취나물 맛이 궁금하다고 하자 아낙이 필자에게 취나물 잎사귀를 뜯어 건네주고 있다.

파도의 위력은 엄청나서 쌀 반 가마 크기의 몽돌들이 파도에 맞아 이리저리 구르는 소리가 마치 맷돌을 돌리는 듯하다. 파도는 대자연의 신화적 힘을 맘껏 과시하며 육지에서 온 자전거 나그네들의 가슴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파도를 구경하며 갯바위 뒤에 웅크리고 앉아 가스 스토브를 켜고 핸드드립 커피를 내려 마시는 여유는 울릉도 자전거 여행의 또다른  즐거움이었다.

최 대장의 얘기처럼 이틀 전부터 육지와의 교통이 끊겨 해안도로를 오가는 차량이 거의 없다. 바람이 불자 발이 묶일 것을 염려한 관광객들이 일찌감치 섬을 떠나 파도가 장관을 이룬 바닷가 길을 독차지하고 맘껏 향유할 수 있었다.

시간제 일방통행 터널 지날 때는 모골이 송연
바람을 정면으로 받고 있는 서쪽 해안도로 곳곳에 부러진 나뭇가지와 절벽 위에서 떨어져내린 낙석들로 어지럽다. 울릉도의 해안절벽은 너무 높고 가팔라 대부분 구간에 낙석 방지망이 설치되어 있지 않다. 이 길을 지나다 낙석에 맞아 자동차 지붕이 찌그러졌다거나 바로 코앞에서 바윗덩이가 떨어지는 바람에 십년감수했다는 얘기는 울릉도 주민들에게는 흔한 경험이다. 결국 절묘하게 돌이 떨어지는 타이밍에 낙하지점을 지날 경우 필연적으로 사고를 당하게 된다는 얘기다. 떨어진 지 얼마 되어 보이지 않는 맷돌만 한 화산암 덩어리들은 자전거 위에 몸 전체가 노출된 채 겨우 얄팍한 헬멧 하나로 무장한 우리들의 기를 질리게 만들었다.

울릉도에서 모골이 송연해지는 또 하나의 순간은 터널을 통과할 때다. 울릉도의 대부분 터널들은 차량 2대가 동시에 교행할 수 없는 1차선. 터널 양 끝에 설치된 신호등의 지시를 어긴다면 터널 안에서 정면충돌할 수밖에 없다.

문제는 시간제로 점등되는 신호등의 주기가 자전거가 아닌 자동차의 속도를 감안해 세팅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자동차보다 느릴 수밖에 없는 자전거가 터널을 채 빠져나오기 전에 신호가 바뀌어 건너편에서 자동차가 들어온다면? 겁을 잔뜩 먹은 우리들은 터널을 빨리 빠져나가기 위해 전력 질주를 했지만 그마저 만만한 일은 아니었다. 터널 내부는 바람의 통로여서 엄청난 맞바람이 불어와 속도가 나지 않자 거의 패닉 상태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수층골에서 두 개의 터널을 더 지나 태하리로 들어서자 이번엔 바람이 왼쪽에서 불어와 자칫 핸들을 잡은 손에 힘을 빼면 넘어질 판이다.

육지보다 가을이 3주 가량 늦게 찾아온 울릉도의 감나무에 매달린 홍시를 맘씨 좋은 주인으로부터 허락받고 따먹었다.
육지보다 가을이 3주 가량 늦게 찾아온 울릉도의 감나무에 매달린 홍시를 맘씨 좋은 주인으로부터 허락받고 따먹었다.

태하리에서 허영만 대장 일행들과 합류, 그날 밤은 대풍감 안쪽 태하 황토굴 안에서 야영했다. 손을 뻗으면 닿을 듯 가까운 곳에서 집채만 한 파도가 방파제에 부딪히며 내는 소리를 자장가처럼 들으며 단잠에 빠져들었다. 별이 총총한 밤하늘에 별똥이 길게 꼬리를 달고 떨어지는 것을 본 것이 꿈인지 현실인지 알 수 없었다.

이튿날, 아침 댓바람부터 진땀을 빼며 해발 300m에 육박하는 현포령을 돌파하자 입에서 단내가 났지만 현포전망대에서 바라보는 그림 같은 현포항의 풍경에 빠져든다.

아침을 거르고 현포령을 넘느라 에너지가 바닥난 탓인지 중간말 민가에 주렁주렁 열린 감과 무화과를 보자 군침이 돈다. 감나무 아래서 입맛을 다시며 얼쩡거리자 안에 계시던 할머니 두 분이 물끄러미 내다보더니 맘껏 따먹어도 좋다고 하신다.

감사한 마음에 뭐 해드릴게 없겠느냐고 묻자 주저주저하시더니 뒤뜰에 나무가 우거져 사람이 지날 수 없을 정도이니 톱으로 좀 잘라 달라신다. 30분에 걸쳐 벌목작업을 해드리자 할머니들은 이번엔 호박조림을 한 사발씩 내주셨다. 호박을 어슷썰기로 썰어 마늘을 넣고 물컹해질 때까지 삶은 뒤 새우젓으로 간을 한 호박조림은 속을 편안하게 하면서도 든든하게 채워줬다.

현포에서 나리, 천부리를 지나 보루산 아래 선창에서 또 다시 엄청난 고개를 만났다.

석포리로 올라붙는 이 고갯길은 울릉옛길의 들머리로 거리는 3km가 채 되지 않았으나 해발 0m부터 350m까지 올라가는, 그야말로 코가 닿을 만큼 가파른 고바윗길이었는데 중간말 할머니댁에서 든든히 먹은 호박조림의 힘으로 단 한 번도 쉬지 않고 주파할 수 있었다. 울릉옛길은 옛날 울릉도 사람들이 바람이 심해 배가  뜨지 못할 경우 저동과 나리동, 천부 쪽의 섬목을 걸어서 다녀올 수 있도록 개척한 약 2.5km의 비포장 산길이다.

석포리에서 허 화백의 트레킹팀과 합류해 울릉옛길을 함께 넘었다. 울릉옛길은 전체구간 중 초반 1.5km 정도는 자전거를 타고 갈 수 있고 나머지는 경사가 심하고 바위들이 날카롭게 드러나 있어 끌고 가야 하지만 관음도와 죽도가 내려다보이는 바다 풍경을 굽어보며 감탄사를 연발하며 가다보면 어느새 끝이다.

현포항은 울릉도에서 가장 아름다운 항구. 현포령 정상부에서 잠깐 다리쉼을 하는 집단가출 멤버 뒤로 현포의 고즈넉한 풍경이  펼쳐져 있다.
현포항은 울릉도에서 가장 아름다운 항구. 현포령 정상부에서 잠깐 다리쉼을 하는 집단가출 멤버 뒤로 현포의 고즈넉한 풍경이 펼쳐져 있다.

울릉도 총 일주 거리는 52.4km. 최근 육지에서 울릉도를 오가는 여객선 노선이 확대됨에 일반관광객뿐 아니라 자전거 동호인들의 방문도 함께 늘어나고 있다. 기존의 포항(썬플라워호), 묵호(씨플라워호) 2개 노선이던 울릉도 뱃길이 올해 경북 후포, 강원도 강릉, 그리고 취항 중인 포항에 1개 여객선이 추가로 투입된 것이다.

서면 구암에서 울릉도에서 가장 높은 고개인 태하령을 넘는 코스를 택할 경우 약간 길어지지만 그래봐야 1.5km 정도다. 현포령과 선창에서 석포리로 오르는 고갯길이 꽤나 힘들지만 그 밖의 곳은 터널이 신설되고 해안도로가 미끈하게 뻗어 있다.

주의할 점은 앞서 언급한 것처럼 터널 통과 신호 주기가 자동차 속도 기준으로 되어 있어 터널 안에서는 거의 전력 질주를 해야 한다는 점. 석포리에서 저동 내수전으로 통하는 산악임도 울릉옛길 구간은 일부가 자전거로 지나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으나, 총거리 2.5km 미만으로 여유롭게 자전거를 끌고 가도 2시간 이내에 통과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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