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계의 어느 먼 혹성 같은 풍경 속을 달린다

글·사진 | 이남석 서울성동공고 교사

입력 : 2015.02.16 11:32

힌두쿠시산맥 굽어보는 와칸밸리를 지나 파미르 고원으로 가는 길

호록은 타지키스탄 남부의 가장 큰 도시다. 원래 파미르 하이웨이는 호록을 출발해 젤란디를 경유해 곧바로 무르갑으로 가는 길로 옛날 구소련이 물자 수송과 군사 목적으로 낸 길이다. 이 길을 달리면 쉽게 파미르를 횡단할 수 있지만, 장대하고 신비한 힌두쿠시와 푸른 독수리의 날개를 닮았다는 와칸밸리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훨씬 먼 와칸밸리의 중심도시 이쉬카심으로 자전거 방향을 틀었다.

[해외여행 | 파미르고원 자전거 횡단 <중> ]
1 파미르고원의 계곡. 파미르고원으로 들어서는 초입이다. 우주의 외딴 별에 온 듯한 낯선 풍경의 연속이다.

타지키스탄 사람 10명 중 8명은 수니파 무슬림이다. 특히 경작지라고는 거의 찾아볼 수 없는 파미르의 GBAO(Gorno Badakhshan) 지역은 일찍부터 중동의 페르시아인들이 진출해 유목을 하며 살던 지역이다. 그렇다보니 다른 중앙아시아 나라보다 비교적 민족적인 색체와 종교적 신념이 강한 지역이라 할 수 있다. 호록에서 이쉬카심으로 가는 길은 강을 따라가는 길이었다. 강 건너편은 아프가니스탄이었다. 마치 좁은 협곡을 지나는 것 같았다.

힌두쿠시(Killer of Hindus)는 아프가니스탄 북부 서쪽에서 동쪽으로 이어진 긴 산줄기다. 웅장함은 둘째 치고 그 아름다움으로 말하자면 지구상에서 최고라 할 것이다.

해발 7,000m 넘는 봉우리를 많이 거느린 힌두쿠시는 아프가니스탄과 타지키스탄, 파키스탄 국경에 걸쳐 있다. 힌두쿠시의 가장 높은 봉우리 티리치미르(7,600m)가 와칸밸리 건너편에 우뚝 솟아 있다. 비록 자전거 위에서 보는 봉우리와 능선이 1,600km 힌두쿠시의 한 점에 불과했지만 산줄기와의 영적인 교류를 하기에 충분했다.

[해외여행 | 파미르고원 자전거 횡단 <중> ]
2 운 좋게 빤즈강 옆의 노천 온천에서 하루 묵으며 피로를 풀 수 있었다. 3 힌두쿠시 산줄기를 옆에 두고 와칸계곡을 따라 달린다.

마을이 있는 곳은 멀리서도 금방 확인할 수 있다. 푸른 백양나무 군락이 보이면 그곳이 마을이다. 백양나무 군락의 규모가 크면 큰 마을이고, 작으면 작은 마을이다. 마을이 나타나면 빵이나 잼, 양고기 같은 식량을 구할 수 있으며, 반드시 구해야 했다. 마을과 마을이 너무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도로 사정이 워낙 좋지 않아 예정된 시간에 이쉬카심에 도착하지 못했다. 호록에서 이쉬카심까지 130km 거리라 아침 일찍 출발했지만, 도로 사정 때문에 결국 이쉬카심을 20km 남겨두고 날이 저물었다. 길옆에 맑은 물이 솟아나는 큰 웅덩이가 있어 그곳에서 야영하기로 했다.

[해외여행 | 파미르고원 자전거 횡단 <중> ]
1 온천이 솟는 노천 샘터. 2 란가르로 가는 도중 만난 자전거 여행자. 오른쪽이 임공택 씨다.

짐을 풀고 텐트를 친 후 물을 뜨려 손을 집어넣었는데 보통 물이 아니었다. 미적지근한 것이 노천 온천이었다. 이 물로 요리가 가능했고, 따뜻한 물로 목욕하며 누적된 피로를 풀게 되었으니 횡재를 한 셈이었다. 식사를 하고 온천에 몸을 담갔다. 잠시 후 먼저 물 밖으로 나간 임공택 씨가 비명을 질렀다. 물과 바깥의 기온차로 온 몸이 얼어붙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황급히 텐트 안으로 들어가 오랜만에 편안한 밤을 보냈다.

이쉬카심은 아주 큰 마을이었다. 여행자들의 명소인 일요시장이 있는데 일요일이 아니었기에 보지는 못했다. 아프간과 타지키스탄 국경을 흐르는 강 중간에는 제법 큰 섬이 있다. 일요일이면 양국 군인들의 경계 속에 두 나라 사람들이 모여 시장이 형성된다. 양국이 통교하던 시절이었다면 다리가 놓였을 것이고 물물교환은 물론, 문화와 전통과 생각이 교합하여 조화롭게 변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단절되어 이질성의 골이 깊어가고 있다.

길이 험하고 자전거에 매단 짐이 무겁다 보니 크고 작은 고장이 빈번하게 일어났다. 특히 임공택씨의 자전거 짐받이는 이미 류산을 지날 때부터 심상치 않았는데 마침내 고장이 나고 말았다. 아무리 갈 길이 멀고 시간이 촉박해도 고장 난 자전거를 끌고 갈 수는 없는 노릇이니 어떻게 해서든 해결해야만 했다. 여행이란 이처럼 문제에 부딪치고 해결하며 때로 낙담하고 아주 작은 것일망정 기뻐하는 순간을 경험하는 과정이다.

[해외여행 | 파미르고원 자전거 횡단 <중> ]
3 와칸계곡을 따라 란가르로 가는 길. 힌두쿠시의 웅장한 설산이 그림처럼 펼쳐진다.

이쉬카심부터 란가르까지는 마을 간 거리가 무척 멀었다. 다행인 것은 마을 입구나 중요한 도로 옆에 수도시설이 있어 식수를 구할 수 있었다. 경작지는 대부분 강 건너 아프가니스탄 지역에 밀집해 있는데 힌두쿠시의 설산과 빙하에서 흘러내린 물이 풍부하기 때문이었다.

이곳 사람들은 무슬림이지만 옛날 자신들이 숭배하던 대상을 완전히 물리치진 못했다. 호록이나 이쉬카심 같은 곳에서도 제대로 된 이슬람 사원은 보기 힘들었다. 시골로 갈수록 더욱 그러했다. 그렇다고 사원이 없는 것은 아니다. 다만 형태와 양식이 보통 이슬람 사원과 달랐다. 사원은 흙담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그 안에는 의식을 치를 수 있는 일반 민가 크기의 사당만 있었다.

따뜻하고 정성스런 말이 최고의 선물
그리고 사원 입구나 담, 내부에 이르기까지 마르코폴로 양의 뿔을 걸어 놨다. 이곳 사람들에게 마르코폴로 양의 뿔은 상당히 영향력 있는 숭배의 대상이다. 다른 이슬람 국가의 사원에서는 우생숭배라 하여 상상할 수 없는 짐승의 뿔을 걸어놓은 것이다. 여행하는 도중 양의 뿔을 걸어놓은 큰 건물이 있으면 틀림없이 사원이라 보면 된다.

[해외여행 | 파미르고원 자전거 횡단 <중> ]
4 아침 일찍 양떼를 몰고 나가는 목동.

두산베를 출발할 때만 해도 하늘빛은 썩 맑다고는 할 수 없었다. 가까운 곳은 깨끗해 보였지만 먼 곳을 보면 마치 스모그나 황사가 온 것처럼 선명하지 않았다. 하지만 와칸밸리에 들어서면서부터 고지대 산악지형에서나 볼 수 있는 깊고 밝은 하늘이 모습을 드러냈다. 길은 완만한 오르막이라 힘들지 않게 보였지만 실상 비포장이고 노면이 불규칙해 우리나라 임도보다 훨씬 힘들었다. 안병익씨와 임공택씨는 힘을 냈다. 특히 안병익씨는 계속 변하는 경치에 연신 감탄사를 내보내며 카메라 셔터를 누르기에 바빴다.

란가르가 가까워지자 농지가 보이고 마을도 자주 눈에 띄었다. 점심때가 다 되어 작은 마을의 가게 앞에서 휴식을 취했다. 그곳에는 마을사람 여럿이 나와 있었는데 이슬람 사제도 있었다. 그는 모스크에서 사제로 일하고 있다고 했다. 어린아이를 안고 편안한 얼굴로 나와 대면한 모습에서 단번에 그가 농민이나 목동이 아니란 걸 알 수 있었다.

그에게 이곳 사람들의 생활에 대해 물어보자 그는 매우 진지하고 신중하게 대답했다.

특히 아프가니스탄 땅을 가리키며 강대국들에 의해 같은 민족임에도 만나지 못하고 떨어져 산다며 비통해했다. 아프가니스탄은 미국, 타지키스탄은 러시아의 지배를 받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해거름이 되어 마을 사람들이 공동으로 빨래도 하고 놀이도 하는 시냇가 옆 풀밭에 야영지를 정했다. 자세히 보니 먹을 수 있는 물이 아니었다. 하는 수 없이 물통을 들고 민가를 찾았다. 물 얻는 것이야 하도 많이 하여 몸에 익은지라 정중하게 인사를 하고 물을 구했다. 마침 이 마을은 우물이 몇 군데 없어 물을 길어다가 부엌에 있는 커다란 물통에 부은 후 필요할 때마다 떠서 사용했다. 젊은 아가씨는 내가 가져 온 물통에 물을 가득 따랐다. 아무래도 이런 오지에서 그것도 외국인이 자신의 집에 물을 얻으러 오는 경우가 어디 흔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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