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로 떠나는 일본 속의 한국사 탐방-규슈편 답사 3일차

강성철 기자 이 동영상취재·사진 임정환PD

입력 : 2015.09.25 15:12

3일차 : 아리타(有田) - 이마리(伊万里) 도자기 마을 - 가라쓰 올레 - 히젠 나고야성(肥前 名護屋城) - 가카라시마(加唐島)

자전거로 떠나는 일본 속의 한국사 탐방-규슈편 3일차 (Photographer 강성철·임정환 / 동영상취재 임정환PD)

조선 도공들의 혼(魂)이 숨쉬는 곳, 아리타 도자기 마을

일본에서 ‘도자기의 고향’이라 불리는 아리타(有田). 사가현의 서부에 위치한다. 마을 면적의 약 70%가 산으로 둘러싸인 인구 2만의 작은 산골마을이다. 이곳의 가마는 200여곳이 넘고 600여곳 이상의 도자기 가게가 있다.


	'일본 속 한국, 두바퀴로 달리다' 여행 3일차 상세일정 스케쥴
'일본 속 한국, 두바퀴로 달리다' 여행 3일차 상세일정 스케쥴

정유재란 당시 1597년경 사가번 번주 나베시마 나오시게((鍋島直茂)에 의해 끌려온 조선인 도공 이삼평(李参平) 일행은 1616년 이즈미산(泉山)에서 고령토 광산(白磁鑛)을 발견하여 ‘덴다구니(天拘谷)가마’를 열어 일본에서 최초로 도자기 백자를 만들어냈다. 당시 일본은 흙으로 만든 토기나 도기는 만들었으나 자기를 생산하지 못했다.

따라서 임진왜란 정유재란을 일본에서는 흔히 ‘도자기전쟁’이라고 할 만큼 백자를 만드는 조선의 도공들을 잡아갔다. 이후 아리타도기라 불리며 도자기 생산이 본격화되어 골짜기에 마을이 형성되고 에도(江戶)시대 이후 이마리항을 통해 네덜란드 동인도회사를 통해 이슬람권과 유럽으로 수출이 되면서 ‘이마리도기’라는 별칭과 함께 세계적인 도자기로 인정을 받게 되면서 번영했다. 아리타 자기는 독일의 마이센(Meissen)자기의 탄생에도 영향을 미친다.

아리타 자기(또는 이마리 자기)의 모태를 만든 인물, 이삼평

이곳에 오면 이삼평을 신으로 모시고 있는 도잔신사(陶山神社)를 꼭 가봐야 한다. 철길 바로 옆에 위치한 1658년에 세워져 350여년의 연륜을 가진 그야말로 고색창연한 신사로 도자기마을 답게 도자기로 만든 도리이가 한껏 위용을 드러내고 있다.


	이삼평을 신으로 모시고 있는 도잔신사
이삼평을 신으로 모시고 있는 도잔신사

아리타마을이 내려다보이는 도잔신사 뒤편 산자락에는 1917년 아리타요업 300주년을 기념하면서 아리타 사람들이 ‘대은인’으로 추앙하는 도조(陶祖) 이삼평의 기념비를 세웠다. 이삼평은 조선도공으로 끌려와 일본의 도자기 문화를 찬란하게 꽃피운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마침 우리 일행이 갔을 때 기념비 앞에 놓여있는 시원소주병을 보고 가슴 한켠이 먹먹해지는 것은 나만이 가지는 느낌일까?

바로 주변에는 채굴로 산 전체가 깊게 파인 고령토 광산인 이즈미산(泉山)의 자석장(磁石場)이 있고 바로 곁 산모퉁이로 돌아가면 아주 작은 석장신사(石場神社)가 있는데 도조 이삼평이 한복차림을 한 도예조각상이 모셔져 있다.


	도조 이삼평 기념비
도조 이삼평 기념비

마을 쪽으로 내려와 덴다구니(天拘谷)가마터를 둘러보고 마을 공동묘지에 있는 이삼평묘소를 참배했다.

신비의 도자기 마을 오카와치야마

다음 행선지인 이마리(伊万里)로 향했다. 가는 길목에 ‘사가현립 규슈도자문화관’에 들렀다.  조선도공들의 아리타자기를 비롯한 현재까지의 규슈 도자기 역사를 보여주는 박물관이다. 특히 제3실에 가면 이마리야키(伊万里燒)를 비롯한 가라쓰 등 규슈 각지의 도자기 명품들을 볼 수 있다.

이마리에 오면 반드시 가봐야 하는 곳으로 3백년의 역사를 가진 도자기마을, 이마리 오카와치야마(大川內山). 첫눈에 보기에 아름답고 조용한 작은 산골 마을이다. 세이라야마(靑螺山)와 병풍바위 등 3면이 산으로 둘러싸여 자리한 마을은 보기에는 아름답지만 갇혀있는 형상이다. 당시 도자기의 제조법이나 도공들에 대해 엄격한 감시를 위해 이곳을 선택했다고 한다.


	채굴로 산 전체가 깊게 파인 고령토 광산인 이즈미산의 자석장
채굴로 산 전체가 깊게 파인 고령토 광산인 이즈미산의 자석장

	이삼평 기념비에서 내려다본 아리타 도자마을 모습
이삼평 기념비에서 내려다본 아리타 도자마을 모습

	이마리의 오카치야마 도자기마을
이마리의 오카치야마 도자기마을

오카와치야마(大川內山)는 산중 깊숙이 자리한 비요의 마을(秘窯の里)로 나베시마 번주는 1675년부터 번을 폐지하고 현을 설치하는 1871년 폐번치현(廃藩置県)까지 사가 나베시마번의 번요(藩窯)를 설치하고 쇼군이나 번주에게 보내는 도자기를 굽기 시작한 곳이다. 그후 세계적인 명품으로 인정받고 있는 ‘나베시마’로 불려지고 있다. 현재 30여곳의 도자기 가문에서 이마리자기의 전통을 계승하고 있다.

조선 자기장들의 넋을 기리는 도공무연탑

이곳에 오면 꼭 들려야 할 곳은 조선도공의 자취가 남아있는 ‘도공무연탑(陶工無緣塔)’과 ‘고려인의 비(碑)’이다. 도공무연탑은 주차장 건너편 산자락에 공동묘지가 있는 곳에 자리하고 있다. 연고를 알 수 없는 조선 도공들의 무덤으로 조선도공, 고려인에 대한 고마움을 잊지 않고 매년 봄이면 공양을 올린다고 한다. 그곳에도 마침 시원소주가 놓여있어 미안한 마음과 더불어 감사의 마음을 느꼈다.

도공무연탑에서 마을 아래쪽으로 가다보면 ‘고려인의 다리’를 지나 ‘고려인의 비’를 만날 수 있다.

마을은 때마침 ‘도자기 풍경축제(風鈴まつり)’ 중이었다. 마을 곳곳에 걸려있는 도자기 풍경이 바람에 흔들리며 울리는 맑은 소리는 사람 하나 보이지 않는 이곳 마을을 적막하고 신비스럽게 만드는 듯 하다. 마을을 뒤로 하며 다시 바라본 오카와치야마(大川內山)는 마치 마을 전체가 비밀을 간직한 듯한 풍경이다. 그래서인지 다시 한 번 꼭 오고 싶은 묘한 충동을 불러 일으켰다.


	이마리 오카치야마에 있는 도공무연탑
이마리 오카치야마에 있는 도공무연탑

규슈 올레 가라쓰 코스 '히젠나고야성터'와 하토미사키 연인의 성지

이마리에서 가라쓰의 히젠 나고야성(肥前 名護屋城)터까지는 43km, 자동차로 1시간 정도 소요된다. 네비게이션를 제쳐두고 지름길로 간다고 휴대폰의 위성지도를 보고 찾아가는 길은 시골 오지 중의 오지 같은 곳이었다.

겨우 차 한 대가 지나갈 정도의 도로를 따라 경사길을 오르는데 한 쪽은 벼랑길이고 길은 외길인데 아찔하기만 하다. 만약 반대편에서 차라도 나타난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우리를 태우고 가는 기사님은 현지여행사 사장님으로 여성인데 운전이 과감하고 용감하다. 오지 같은 산중에도 간혹 보이는 일본의 집들은 2층으로 크기도 제법 크고 번듯하였다. 조금 과장하자면 대궐 같은 집들도 눈에 띄어 이런 시골에 저렇게 큰 집(?)이 좀 의아했다. 일본답게 주변에 쓰레기도 보이지 않고 깔끔한 게 인상적이었다.

30여분을 그런 오지 길로 가다가 정상적인 도로에 진입하니 일행 중 한 분이 죽을 뻔 했다며 엄살을 떨었다. 사실 조금 겁이 날만 했다.

그렇게 20여분 정도를 더 달리니 하토미사키(波戶岬)라는 규슈 서북부 끝인 해안가에 도착했다. 넓은 평지가 자리한 곶이라 시원스럽게 바다가 바라보인다. 현해탄이다. 현해수중전망탑(玄海海中展望塔)이 있어 수심 7m의 아름다운 바다 속을 볼 수 있다.


	가라쓰올레길 코스인 히젠나고야성터의 올레표지판
가라쓰올레길 코스인 히젠나고야성터의 올레표지판

주차장 근처에는 이곳의 명물인 소라구이와 오징어구이를 파는 포장마차가 줄지어 있다. 주변이 한적하고 평화롭기만 하다. 그 아래 해변가에는 아담하고 예쁜 하토미사키해수욕장이 있다. 입구에는 돌하루방과 더불어 규슈올레 가라쓰 코스의 일부 구간임을 나타내는 표지판과 함께 제주올레 표식도 있어 무척 반가웠다. 규슈올레 가라쓰 코스는 소라구이 포장마차가 종점인데 하토미사키(波戶岬) 산책로를 지나 히젠나고야성 박물관을 지나 출발지인 미치노에키 모모야마텐카이치(道の驛桃山天下市)까지 총 11.2km로 나고야성 주변의 삼림과 주상절리 등 하토미사키(波戶岬)로 이어지는 바다의 절경을 볼 수 있는 매력적인 코스다.


	가라쓰올레길 코스중 하나인 하토미사키 해수욕장
가라쓰올레길 코스중 하나인 하토미사키 해수욕장

조선 침략의 거점이었던 히젠 나고야성

하토미사키에서 히젠나고야성까지는 자동차로 10분이 채 안걸린다. 폐허가 된 성터는 일부 남아있는 석축 주위를 일본 특유의 거대하고 오래된 나무가 에워싸고 있는 듯하다. 곧장 성터로 올라가니 그야말로 쓸쓸한 황성(荒城)이다. 성터는 주변에서 제일 높고 전망이 좋은 위치에 자리하고 있다. 천수각 터에서 앞을 바라보면 현해탄의 이키섬(壹岐島)과 백제 무령왕 탄생지인 가카라시마(加唐島)가 눈 앞에 보이고 멀리는 쓰시마(對馬島)까지 멋진 바다 풍광이 펼쳐진다. 하지만 이곳이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의 침략기지란 것을 생각하면 씁쓸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히젠 나고야성(肥前 名護屋城)은 1592년에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가 가라쓰 히젠(肥前)지역에 임진왜란 정유재란(1592~1598년) 당시 조선을 침략하기 위한 전진기지로서 축조한 성으로 당시 성곽 규모로는 오사카성 다음으로 컸다. 총면적은 17만㎡(약 5만평)에 이르며 성 둘레는 6km이다. 가토 기요마사(加藤清正), 데라자와 히로타카(寺沢広高) 등이 성의 축성을 관장하였고 여러 다이묘를 중심으로 군역에 약 2만 8천여명이 동원되어 8개월 만에 완성했다.  가라쓰 나고야 성은 5층 7단의 덴슈카쿠(天守閣)과 망루가 있었으며, 기와는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좋아하는 금박을 입혔다. 당시 조선으로 출병하기 위해 일본 전국의 다이묘들이 이곳 나고야 성 주변으로 모여들었으며 반경 3킬로미터 이내 약 130개 소의 다이묘 진영이 발견되었다. 당시 성주변 마을은 다이묘와 병사, 상인들로 붐벼 20만명 이상이 거주하며 번성했다.


	히젠나고야성터에서 내려다본 현해탄
히젠나고야성터에서 내려다본 현해탄

1592년 임진왜란과 1597년 정유재란으로 조선을 침략하던 일본은 1598년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사망하자, 철군하였고 히젠 나고야 성 일대에 진을 치고 있던 여러 다이묘들 진영도 함께 철군하였다. 히젠 나고야성은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의 에도(江戶) 막부가 허물어서 황폐화되었으며, 이곳에서 뜯어낸 자재는 1602년 가라쓰성을 축조하는데 사용되었다. 400여년간 빈터로 남아있다가 1976년 보존정비사업으로 현재의 모습을 갖추었다.

1973년에는 성터 남쪽에 ‘사가현립 나고야성박물관’를 개관했다.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을 ‘침략전쟁으로 규정하고 ’일본 열도와 한반도의 교류사‘를 주제로 원시 고대부터 현대까지 수천년에 걸친 한일 교류와 관련된 자료를 상설 전시하고 있다.

한가지 팁을 주자면 히젠 나고야성터를 보다 실감있게 즐기는 방법은 박물관에서 무료로 대여해주는 테블릿PC로 성터 현장에서 그 당시의 성의 모습을 재현한 ‘가상현실(virtual reality)’로 볼 수 있다는 점이다.


	히젠나고야성터
히젠나고야성터

백제 무령왕이 태어난 섬, 가카라시마

연일 찌는 듯한 무더위 속에서 히젠 나고야성터를 뒤로하며 백제 무령왕 탄생지인 섬 가카라시마(加唐島)를 가보기로 했다. 가카라시마까지는 요부코(呼子)항에서 배로 20여분이 채 걸리지 않는데 하루에 4차례 밖에 배가 다니지 않아 일정에 맞춰 갔다오기가 생각보다는 쉽지 않은 곳이다. 마침 우리 일행도 10분전에 도착, 겨우 배에 올라탔다. 정원이 86명인 작은 배로 가카라시마를 가는 승객은 그리 많지 않았다.


	가카라시마에 있는 백제무령왕탄생기념비
가카라시마에 있는 백제무령왕탄생기념비

가카라시마는 현재 200명 정도가 살고 있는 작은 섬으로 섬 전체 약 2만그루의 동백나무가 자생하고 있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섬에 도착하자 항구에서 왼쪽 언덕 200여m 쯤에 백제 무령왕 탄생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이 기념비는 공주시민들이 성금을 모아 2006년 6월 25일에 건립되었는데 김정헌 공주대 미술교육과 교수가 무령왕릉의 아치형 전실(磚室) 형태를 모티브로 디자인하여 익산 화강암으로 제작한 것이다.

기념비 주변에는 한국인들이 조약돌에 날짜와 함께 자기 이름을 적어 놓여 있었는데 아마도 한국 연예인들이 촬영차 다녀간 듯 낯익은 이름들이 눈에 띄었다.

기념비로부터 500여m 정도 언덕길에 올라가니 백제무령왕 탄생지 동굴인 ‘오비야우라(オビヤ浦)’라는 표석이 보인다. 조금 더 길을 따라 내려가니 해안가 동굴 ‘오비야우라’에 ‘제25대 백제무령왕 탄생지’라는 목판 표지판이 있고 동아줄이 걸려있다. 이곳에서 태어나 근처 우물에서 첫 목욕을 시켰다고 한다.


	백제무령왕 탄생지 오비야우라동굴
백제무령왕 탄생지 오비야우라동굴

무령왕릉에서 발견된 목관이 일본 열도에서만 자라는 금송(金松)이었던 것을 염두에 두어서인지 탄생지 가까운 언덕에 일본의 금송인 ‘고마야키(高野槙)’를 식수해 놓은 것이 보인다.

무령왕은 성은 부여(扶餘), 이름은 사마(斯摩/斯麻) 혹은 융(隆), 시호는 무령(武寧)이다. 이름을 따서 사마왕(斯麻王)이라고도 하며, ‘삼국사기(三國史記)’에는 동성왕(東城王)의 둘째아들이라고 기록되어 있지만, ‘일본서기(日本書紀)’에는 문주왕(文周王)의 동생인 곤지(昆支)의 아들로 동성왕(東城王)과는 이복형제 사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다시 요부코항으로 돌아가기 위해 배를 기다리며 잠시 돌아본 가카라시마는 정말 작고 평화롭게 보이는 어촌 마을이다. 항구에서 마을로 들어가는 입구에 제25대 백제 무령왕릉 탄생지라는 일본어와 한글로 된 커다란 안내판을 붙여두었다.

이제 요부코에서 숙소인 가라쓰(唐津)로 향했다. 호텔에 여장을 풀고 온천에 몸을 담그니 하루의 피로가 가시는 듯하다. 저녁식사 후 호텔 바로 옆에 ‘무지개 솔밭(虹の松原)’을 산책하며 해변가로 나가 보았다. 해변가에서 본 무지개 모양으로 늘어선 솔밭은 그야말로 장관이다.

니지노마쓰바라(虹の松原)는 가라쓰만의 해변가에 무지개 형태로 5km나 이어지는 소나무 숲으로 일본의 특별 명승지로 지정되어 미호노마쓰바라(三保の松原, 시즈오카시), 게히노마쓰바라(氣比の松原, 후쿠이(福井)현 츠루가시)와 함께 일본의 3대 소나무 숲으로 손꼽히고 있다. 17세기초 초대 가라쓰성 번주가 해안의 파도와 바람을 막기 위해 해안선 사구에 길이 약 5km, 폭 약 1㎞에 걸쳐, 약 100만 그루의 흑송(黑松)을 심어 400년 후 울창한 소나무숲으로 자란 것이다. 솔향을 맡으며 산책하거나 자전거라이딩, 드라이브코스로 멋진 곳이다.

특히 가가미야마(鏡山, 284m) 전망대에 올라가서 바라보는 해안선과 니지노마쓰바라의 풍광은 볼만하다고 한다. 백촌강(663년) 전투에 참전하기 위해 한반도로 떠나는 연인을 전송하고 결국 돌아오지 않는 연인을 그리워하다 망부석이 된 마쓰우라 사요히메(松浦佐用姬)도 볼 수 있다. 일정상 정상 전망대까지 가보진 못했다.

*자전거로 떠나는 日本속의 한국사 탐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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