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이 초등학교 5학년이던 2011년 10월 2일 춘천 라이딩이 아들과 함께한 첫 자전거여행이다. 중학교 3학년이던 2015년 8월 8일 가평 용추계곡 물놀이 라이딩이 아들과 함께한 마지막 자전거여행이었다. 그동안 (1) 국토종주/4대강 자전거길은 15회에 걸쳐 1,280km를 달렸다. (2) 자전거 인터넷 카페 '자전거로출퇴근하는사람들'에서 동호인들과 함께 37회에 걸쳐 2,446km를 달렸다. (3) 해안선/휴전선 라이딩(서울-서해안-남해안-동해안-휴전선-서울)은 둘이서 34회에 걸쳐 2,882km를 달렸다. (4) 기타, 나의 동문 또는 아들 친구 등과 함께 28회에 걸쳐 1,478km를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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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과 함께한 첫 자전거여행 - 춘천 소양강댐
3년 10개월 동안 114회에 걸쳐 8,086km를 아들과 함께 달렸다. 아빠와 아들의 전통적 부자 관계에 더불어 긴 길을 함께 달리며 친구 같은 우정이 더해졌다. 또 거기에, 힘든 과정을 함께 겪으며 동지애까지 쌓였다. 아들과 들길을 나란히 달리며 온갖 이야기를 나눌 때, 힘든 라이딩 후 목욕탕 온탕에 함께 몸을 담글 때, 먼 남도 땅 모텔에서 곤히 잠든 아들 얼굴을 들여다 볼 때 살짝 애잔했지만 삶 최고의 행복을 맛봤다.
50년 동안 살면서 뿌듯하고 당당한 시절도 있었고 회한에 찬 어두운 시절도 있었다. 높은 지위에 있는 친구도 있고 돈을 많이 번 친구도 있다. 그러나 나는 아직까지 이룬 것도 없고 쌓아둔 것도 없다. 앞으로도, 무언가 화려하게 이루거나 무언가 넉넉하게 쌓을 것 같지도 않다. 하지만 누가 뭐래도 아들과 함께 자전거를 달린 3년 10개월 8,086km는 내 삶의 국보(國寶)다.
프랑스 작가 마르셀 프루스트가 쓴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라는 책이 있다.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 프루스트를 읽은 사람과 읽지 않은 사람만 있다."는 앙드레 모루아의 말에 전자가 되고 싶었다. 참 '있어 보이는' 책이었다. 10권이 넘고 수천 페이지가 넘는 이 책을 대학 시절 사놓고 30년이 지난 지금까지 1권을 다 못 읽었다. 문장이 얼마나 긴지 마침표를 만나려면 한참을 인내해야 했다.
이제 '프루스트를 읽은 사람'이 되고 싶지는 않다. 다만 내 소중한 시간을 잃어버리고 싶지 않을 뿐이다. 시간은 기록될 때 잊어버리지 않고 잃어버리지 않는다. 나중에 기록을 토대로 다른 무언가를 창조할 수도 있다. 기록함으로써 시간을 얼려버리고 싶다. '냉동보관' 했다가 30년 후 손자가 컸을 때 함께 읽고 싶다. 할아버지 삶의 전성기, 그 멋진 시간을! 손자에게 꼭 말하고 싶다. 네 아빠가 얼마나 멋진 아들이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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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춘선 전철의 자전거들
2011년 10월 2일 일요일 아침 아들과 함께 춘천으로 가기 위해 전철을 탔다. 휴일에는 전철 맨 앞 칸과 맨 뒤 칸에 자전거를 '합법적'으로 실을 수 있다는 것은 정말 신기한 일이었다. 상봉역에서 경춘선으로 갈아타야 하는데 대학생 시절 MT 갔던 때만 생각해서 전철표를 상봉역까지만 끊었다. 경춘선을 서로 연결된 '전철'이 아니라 옛날처럼 따로 기차표를 끊어야 하는 '철도'로 생각한 것이다. 경춘선 맨 앞 칸에는 비싸 보이는 자전거가 가득했다. 화사한 빛깔의 자전거 전용 옷과 헬멧, 그리고 사람들 밝은 표정으로 가득했다. 신세계가 열리는 순간이었다. '이런 세상도 있구나! 사람들은 이렇게 노는구나!'
물론 집 근처 한강에서 아들과 함께 자전거를 타기는 했다. 그러나 이렇게 자전거 '여행'을 하다니! 여행 2주일 전 '나도 자전거 출퇴근 한번 해봐?'라는 생각이 갑자기 들었고, 삐거덕거리는 오래된 신문사 자전거로 실행했다. 자전거를 하나 새로 사야겠다 싶었고, 인터넷으로 검색했다. 자전거 인터넷 카페 <자전거로출퇴근하는사람들>에 가입하게 됐고, 자전거와 '자전거여행'에 대해 하나씩 배우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나는 헬멧도 없었고, 아들은 인라인스케이트용 헬멧으로 대체했다. 나는 25만원 주고 새로 산 유사MTB 자전거, 아들은 앞바구니가 달린 어린이용 자전거를 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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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 소양강처녀 동상
60세 소양강처녀는 평소 운동을 열심히 한 듯 보였고, 아들은 신이 났는지 소양강댐 그 급한 오르막에서 근성을 발휘했다. 마침 할아버지께서 전화를 걸어와 칭찬을 해주고 용돈을 약속하자 더욱 흥을 냈다. 닭갈비를 먹는데 아들이 춘천역에서 챙긴 쿠폰으로 10%를 할인받았다. 내 평생 쿠폰을 챙겨 커피를 공짜로 마시거나 뭔가를 할인받거나 그런 적이 없다. 아빠와는 다르게 아들놈은 돈 관리에도 철저하다. 자기 주머니에 들어가면 나올 줄을 모른다. 나쁜 놈, 지독한 놈이다. 딱 한 번 얻어먹은 적이 있다. 설날 세뱃돈 합계 45만원을 받았는데 엄마에게 35만원이라고 말해줄테니 꼼장어 한 번 사는 게 어떠냐는 협상이 성공했을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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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로 돌아오는 경춘선 전철에서 잠든 아들
서울로 돌아오는 전철에서 아들은 자기 자리를 스스로 할머니에게 양보했고, 내 발등에 앉아 잠이 들었다. 초등학교 5학년, 더 크지 않았으면 싶었다. 애가 초등학교 고학년일 때가 제일 좋다고 많은 부모들이 얘기한다. 말도 어느 정도 통하고 아직 예쁘기 때문이다. 조금만 더 크면 아, 그 징그러움이란! 그 애먹임이란! 어디서 읽었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남자삼락(男子三樂) 중 최고는 딸 키우는 재미"라고 소설가 최인호는 썼다. 어릴 때도 딸이 아들보다 더 좋고, 다 키운 후에도 그렇다는 게 요즘은 대세로 굳어졌다. 특히 후자는 대형종합병원에서 간호사로 일하는 내 조카딸이 강력히 증언하는 바다. 아들 하나밖에 없어서 딸 키우는 재미를 경험 못하는 게 한(恨)까지는 아니더라도 아주 큰 아쉬움이다.
그러나 자전거여행을 함께 할 수 있다는 점에서는 아들이 훨씬 더 좋다. 잠든 애 얼굴을 들여다보며 가슴 찌릿한 행복감을 느꼈던 그때는, 춘천역에서 소양강댐까지 왕복으로 달린 30km가 8,086km로 길어질지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