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람들이 노는 법-자전거로출퇴근하는사람들

글·사진=반창호 자전거마니아

입력 : 2016.04.25 14:19

요즘 영국프로축구(EPL)가 너무 재미있다. 작년만 해도 강등을 걱정하던 레스터 시티가 선두를 질주하고 있는데 그 중심엔 제이미 바디라는 골잡이가 있다. 벽돌공장에서 일하며 8부리그에서 뛰었던 바디는 29세 늦은 나이에 기량이 만개하여 이번 시즌 득점왕까지 노리고 있다. 레스터 시티는 엘리트 출신 고액 연봉 스타가 즐비한 부자 팀과 싸울 때 점유율은 기꺼이 양보한다. 수비 위주의 축구를 하다가 역습 한방으로 승리를 낚아챈다. 순간 가속력이 뛰어난 바디를 이용한 전술이다. 한두 번 '이변'이 아니라 1년 장기 레이스에서 '항상성'을 유지하고 있는데, 유독 1:0 승리가 많다. 바디의 인생역전과 함께, 약자가 강자를 이기는 방법을 보여주고 있는 레스터 시티에 전 세계 축구팬은 열광하고 있다.


	인터넷 카페 '자전거로출퇴근하는사람들'의 불남 팀이 정선군 민둥산에 올랐다.
인터넷 카페 '자전거로출퇴근하는사람들'의 불남 팀이 정선군 민둥산에 올랐다.

레스터와 함께 선두 경쟁을 하는 팀은 토트넘 홋스퍼다. 셰익스피어의 희곡 <헨리 4세>에 나오는 헨리 퍼시의 별명이 '홋스퍼'(Hot Spur, 뜨거운 박차)다. 정의와 명예를 위해서 물불을 가리지 않는, 용맹무쌍과 단순무식의 상징인 홋스퍼는 영국인이 사랑하는 무장(武將)이다. <헨리 4세>에서 홋스퍼는 "인생은 짧다! 살아 있으려면, 살아서 왕이라도 짓밟아라. 죽으려면, 용감하게 죽어라!"라며 반역의 칼을 든다. "아, 죽음의 차디찬 손이 내 혓바닥을 만진다. 이놈의 퍼시야, 너는 흙이다. 그 무엇의 밥이다."라며 죽는다. 배불뚝이 술꾼 폴스타프는 "명예는 느낄 수 없는가? 그래, 죽은 자는. 명예는 묘석의 글자에 불과하다. 명예는 싫다. 목숨이 중요하다."며 술잔을 든다.(셰익스피어, 정음사 셰익스피어전집 2권, 1974, p445~450, 일부 편집하여 인용)


	인터넷 카페 '자전거로출퇴근하는사람들' 써린 팀의 무주군 오두재 가는 길
인터넷 카페 '자전거로출퇴근하는사람들' 써린 팀의 무주군 오두재 가는 길

토트넘 홋스퍼의 열혈팬이 한 명 있다. 사회학의 세계적인 석학 앤서니 기든스다. 토트넘의 홈경기를 빠짐없이 응원하고, 경기가 끝난 후에는 팬들과 함께 맥주를 마시며 '축구 수다'를 떤다. 10년도 더 된 아주 오래전, 어디서 읽었는지도 잊었지만, 아직도 기억에 선명한 인상적인 장면이다. 첫째, 지금이야 토트넘이 우승을 다투고 있지만 당시에는 맨날 지기만 하는 꼴찌 팀이었는데 왜 그렇게 열심히 응원할까 참 신기했다. 프로야구 꼴찌 팀 한화 이글스를 계속 응원하는 광팬을 처음에는 이상하게 생각하다가 거의 존경에 가까운 느낌으로 바뀐 것과 비슷한 경험이었다. 둘째, 퇴계 이황 이후로 세계적인 석학이 배출되지 않고 있는 우리나라 현실이 아쉬웠다. 셋째, 그렇게 대단한 석학이 일반인들과 어울려 축구를 즐기는, 그 열린 문화가 너무 부러웠다. 세계적으로 전혀 인정 못 받는 우리나라의 '대단한' 사람들은 늘 자기들끼리만 논다. 그저 노는 '형식'을 중시하고 과시할 뿐 '노는 그 자체'를 진짜 즐기는 것은 아니다. 이글스파크에서 꼴찌 팀 한화를 열광적으로 응원하는 세계적인 학자가 우리나라에도 있으면 좋겠다. 자전거도 마찬가지다. 세계적으로도 인정받는 어느 재벌 회장님이 계급장 다 떼고, 닉네임만으로 '반지하제왕' 님, '와이리데노' 님과 어울려 '자출사'에서 자전거를 즐긴다면 얼마나 멋지겠는가.


	인터넷 카페 '자전거로출퇴근하는사람들'의 바람 팀이 홍천군 방내천에 모였다.
인터넷 카페 '자전거로출퇴근하는사람들'의 바람 팀이 홍천군 방내천에 모였다.

'자출사'는 국내 최대 자전거 인터넷 카페인 네이버 <자전거로출퇴근하는사람들>의 약칭이다. 그러나 자전거로 출퇴근하는 회원은 그리 많지 않다. 집과 직장의 거리, 샤워 시설 등 제약조건이 많기 때문이다. 자전거 종류, 경력, 체력 수준과 관계없이 자전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인 가장 일반적인 카페다. 온라인에서는 정보를 나누고 오프라인에서는 함께 자전거를 달린다. 바람을 가르며 땀을 흘리고, 탁 트인 풍경에 함성을 지르며, 맛집을 찾아 맛있게 먹고, 자전거 바퀴가 구른 수만큼 '자전거 수다'를 떤다. 그렇게 라이딩 경험이 축적되다보면 친구나 회사 동료보다, 심지어 가족보다 더 친한 관계가 된다. 재산도, 사회적 지위도, 학벌도, 아파트 평수도, 남녀도, 나이도 필요 없다. 10년을 함께 자전거를 탔어도 직업도 모른다. 관심도 없다. 이름도 모른다. 닉네임으로만 서로를 부른다. 재미있는 모임 이름도 많은데 <초밥왕>은 '초보라도 밥 먹는 곳까지 왕복이 가능한 라이딩'이란 뜻이다.


	인터넷 카페 '자전거로출퇴근하는사람들'의 인터메조 팀의 영주시 부석면 마구령을 오르고 있다.
인터넷 카페 '자전거로출퇴근하는사람들'의 인터메조 팀의 영주시 부석면 마구령을 오르고 있다.

자출사에는 자전거와 관련된 모든 자료가 있다. 자전거와 용품의 선택, 정비, 사고, 여행 후기 등 143만 개의 글이 있다. 자전거와 관련해 궁금한 점이 있으면 자출사에서 검색을 하거나 질문 글을 올리면 된다. 돈이 생기지도 않는데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정성껏 쓴 답글이 줄줄이 달린다. 인간 본성은 '돕는' 것을 좋아하는 모양이다. 그래서 인간은 멸종하지 않았나 보다. 세상 '말세'라고 혀를 차는 사람도 있지만 자출사를 보면 세상 참살만 하다.


	인터넷 카페 '자전거로출퇴근하는사람들'의 소리산 팀이 횡성군 청태산에 올랐다.
인터넷 카페 '자전거로출퇴근하는사람들'의 소리산 팀이 횡성군 청태산에 올랐다.

논쟁도 많이 벌어진다. 헬멧 논쟁이 대표적이다. '안전을 위해 헬멧은 필수'라는 게 대세로 굳어졌고 합리적이다. 그러나 반론도 만만찮다. 헬멧을 쓰지 않으면 '상놈' 취급하는 카페 분위기에 반감을 토로한다. 운동과 속도감 위주로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이 한강 자전거길을 과속으로 달리는 게 더 위험하다는 것이다. 짧은 거리를 ‘샤방샤방’ 달리는 자전거에 왜 헬멧을 강요하냐는 것이다.


	인터넷 카페 '자전거로출퇴근하는사람들'의 늘푸른 팀이 서산시 운산면 개심사로 올라가고 있다.
인터넷 카페 '자전거로출퇴근하는사람들'의 늘푸른 팀이 서산시 운산면 개심사로 올라가고 있다.

1,000만 원이 넘는 고가 외제 자전거에 대한 논쟁도 일 년에 수십 번씩 반복된다. 동네 뒷산을 오를 때도 에베레스트를 등정할 때나 필요한 고가의 전문 등산복을 입는 한국인의 과시 성향을 꼬집는다. 그러나 반론이 더 우세하고 정당한 듯하다. '가벼운' 취미생활일 때는 50만 원이하의 자전거로 충분하다. 그러나 '마니아' 급으로 자전거를 즐길 때 질적 차이 2%는 너무나 크다. 그 2% 때문에 가격이 2배가 되고, 또 추가 2% 때문에 몇 백 만원이 더 필요하다. 사진에 푹 빠진 사람도 렌즈 하나에 수 백 만원을 아까워하지 않는다. (참고로, 필자는 장비에 관심이 없고 2%에 둔감한 천성 때문에 200만 원 초반대 자전거로 마니아 생활을 즐기고 있다. 사람마다 다른 스타일을 다른 그 자체로 인정해야 하지 않을까?)


	인터넷 카페 '자전거로출퇴근하는사람들'의 우공 팀이 거제, 통영 라이딩 길에 모였다.
인터넷 카페 '자전거로출퇴근하는사람들'의 우공 팀이 거제, 통영 라이딩 길에 모였다.

자출사는 우리나라 자전거 문화를 선도하고 확산한다. 교통법규를 지키는 건 '당위' 이전에 '이익'임을 알게 되고, 헬멧이 목숨을 구하거나 중상을 경상으로 만드는 사례를 여러 번 만나는 곳이 바로 자출사다. 자전거길에서 추월할 때는 "왼쪽으로 지나갑니다"라고 말한 후 반대 차선에서 다른 자전거가 오지 않을 때 반대 차선으로 넉넉한 간격을 두고 추월해야 함을 배우게 된다. 두 손을 놓고 자전거를 타면서 마치 스타가 된 듯 으쓱한 표정을 짓는 라이더가 창피해지는 곳도 자출사다. 아무도 없는 길에서 손 놓고 타다가 다치는 일이야 저 혼자 일이다. 하지만 다른 자전거가 있을 때 두 손을 놓고 타면, 사고가 나지 않더라도 앞뒤 자전거에 불안감을 유발한다. 그 자체로 이미 민폐이다. 식칼을 휘두르며 거리를 활보하는 사람이 "나는 칼을 능숙하게 잘 다루고, 다른 사람을 해칠 의사가 전혀 없다."라고 말하는 것과 비슷하다.


	인터넷 카페 '자전거로출퇴근하는사람들'이 2016 도심 랠리 중 구리 왕숙천을 달리고 있다.
인터넷 카페 '자전거로출퇴근하는사람들'이 2016 도심 랠리 중 구리 왕숙천을 달리고 있다./사진제공=최정헌

평균속도 단축을 자랑하는 글을 올린 과속 라이더가 "한강 자전거길은 어린이와 보행자와 어슬렁 자전거가 노는 곳입니다. 제발, 자동차도로를 달리세요."라는 댓글을 만나게 되는 곳도 자출사다. 자출사 회원이 모멸감을 느끼는 말이 있다. '자라니'는 고라니처럼 툭 튀어나와 사고를 유발하는 자전거를 일컫는다. 1,400만 자전거 시대라는데 자출사의 '자'자도 모르는 사람이 아직 절대다수다. 자라니는 자출사를 알게 될 때 '자전거'가 될 것이다.


	인터넷 카페 '자전거로출퇴근하는사람들'이 2016 도심 랠리 중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다.
인터넷 카페 '자전거로출퇴근하는사람들'이 2016 도심 랠리 중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다./사진제공=최정헌

지난 일요일 자출사는 '자전거면 충분하다!'는 구호를 내걸고 <2016 도심 랠리>를 주최했다. 일반인에게 올바른 자전거 문화를 알리고 KB손해보험의 후원을 받아 아동기관에 기부하기 위함이다. 개인․단체 또는 가족과 함께 자전거를 달려 31곳 포인트 중 6개 이상을 인증하고 청계광장에 모이는 행사였다. 1,000여 명 이상이 참가하여 성황을 이뤘고 자출사 회원임에 자부심을 느꼈다. 자출사 카페 매니저 최형석 씨(삼도아이엔티 근무, 닉네임 불씨삼도)는 "자전거는 우리 도시와 나라와 지구를 아낄 수 있고, 우리 아이와 손자에게 더 나은 환경을 물려줄 수 있는 아주 중요한 도구입니다. 동시에 일상생활에서 중요한 교통수단이죠. 이번 행사를 통해 교통법규 준수 등 올바른 자전거 문화가 정착되고 확산되었으면 좋겠습니다."라고 말한다.


	인터넷 카페 '자전거로출퇴근하는사람들'이 서울 청계광장에서 2016 도심 랠리를 마무리하고 있다.
인터넷 카페 '자전거로출퇴근하는사람들'이 서울 청계광장에서 2016 도심 랠리를 마무리하고 있다./사진제공=홍동균

자전거는 국가 경제 측면에서 긍정적이고 생산적인 역할을 수행한다. 육체건강에 좋아서 의료비가 절약되고 정신건강에 좋아서 우울증이 사라진다. 주말 동안 녹색 임도(林道)를 달리며 스트레스를 풀고 나면 주중에 노동생산성은 올라갈 수밖에 없다. 공부에 시달리고 사춘기 몸살을 앓는 청소년에게도 자전거만 한 게 없다. 머리끝까지 압박감이 차오를 때 한강을 한 바퀴 돌고 나면 그나마 견딜 만하다. 달리고 싶은 코스가 국내에만 100년 치가 있어서 해외여행 욕구가 줄어들고 그만큼 외화가 절약된다. 자전거를 열심히 타면 건강뿐만 아니라 정력도 좋아진다는 것은 10년 이상 경력의 라이더들이 한결같이 증언하는 바다. 심각한 저출산 문제에 탁월한 대책이 될 수 있다. (이건 아닌가?) 올해 정부 예산이 387조 원이다. 이상한 데 돈 쓰지 말고 투입 대비 그 몇 배를 산출하는 자전거에 투자하라! 대통령과 국회는 회원 수 64만 자출사에 연간 6조4천억 원을 예산 지원하라! (너무 적나?)

[바이크조선 관련뉴스]

  • Copyrights ⓒ 바이크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