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람들이 노는 법 - 대구 달성고 동문 자전거모임

글·사진=반창호 자전거마니아

입력 : 2016.03.22 15:10

주말, 봄이 왔다. 개나리와 진달래는 아직 피지 않았지만 영춘화는 피었다. 경제는 아직 봄이 아니지만, 자전거는 이미 봄을 달리고 있다. 안 온 봄 탓하지 말고 온 봄 즐기면 된다. 주말, 한강에 나가 봤는가? 바구니 달린 자전거를 탄 어린이는 엄마 아빠와 함께 달리고, 쫄바지를 날렵하게 입고 로드바이크에 탄 청춘은 연인과 달리고, 화사한 빛깔의 져지(jersey)를 입고 MTB에 몸을 실은 중년은 지인과 함께 달린다. 이미 완연한 봄이다.


	대구 달성고 동문 자전거모임 '자전거달리고'
대구 달성고 동문 자전거모임 '자전거달리고'
고교 동문이 뭔가? 사실 아무것도 아니다. 동기는 기껏 3년을 같이 생활했을 뿐, 10년 이상 함께 생활한 직장 동료도 많다. 선후배? 학교 다닐 때는 그가 누군지도 몰랐다. 그러나 가장 감수성 민감한 시기의 3년과 애환이 깃든 교실, 그 시간과 공간을 같이 했다는 이유만으로 삶 전체를 같이 한 것만 같다. 동문이라는 이유만으로도 우리는 1년 선배를 부모처럼 모시고(나중에 알고 보니 그 선배는 나보다 생년월일이 늦었다!), 10년 후배를 자식처럼 챙긴다.

	2016년 반포대교 북단에서 열린 대구 달성고 동문 자전거모임 '자전거달리고' 시륜제(始輪祭)
2016년 반포대교 북단에서 열린 대구 달성고 동문 자전거모임 '자전거달리고' 시륜제(始輪祭)

대구 달성고 재경동창회는 운영이 잘 되는 편이다. 법조/IT/건축/교직/금융/의료 등 직능모임과 등산/골프/자전거 등 취미모임이 활성화되어 있다. 자전거 모임 <자전거달리고>는 한 달에 한 번 정기라이딩 갖는데 회원 25명 중 5~10명 정도가 참석한다.

낮 온도가 18도까지 올라갔던 지난 토요일, 시륜제(始輪祭)를 겸해 올해 첫 라이딩을 가졌다. 등산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매년 봄, 한 해 산행의 무사안녕을 빌며 시산제(始山祭)를 지내듯, 흔치 않지만 자전거를 즐기는 사람들도 시륜제를 지낸다. 뭐, 격식이 중요할까. 간단히 음식을 준비해 와서 세 번 절을 한다. 산 자에게는 한 번, 죽은 자에게는 두 번, 신에게는 세 번 절을 하는 게 일반적이다. 50대 초중반인 회원들은 특히 건강에 민감하다. 연식(年式)이 연식인지라 잔고장이 시작되고 큰 고장을 걱정할 나이다. "올 한 해 어깨 탈골, 손목 골절, 다치지 않도록 해주시고. 서행, 안전운전하게 해주시옵소서." 절 세 번이 제법 엄숙하다.


	대구 달성고 동문 자전거모임 '자전거달리고' 2016년 첫 라이딩 코스 뚝섬유원지(좌)와 조말생의 묘(우)
대구 달성고 동문 자전거모임 '자전거달리고' 2016년 첫 라이딩 코스 뚝섬유원지(좌)와 조말생의 묘(우)

첫 라이딩은 잠실운동장 옆 탄천합수부에서 출발하여 반포대교 북단에서 시륜제를 지내고, 팔당역 근처 맛집에서 점심을 먹고, 팔당대교를 건너 잠실선착장에서 마치는 67km 코스다. 특히, 구리 미음나루고개 위쪽에 있는 ‘조말생 묘’에서 내려다보는 한강 조망은 단연 최고다. 올해 겨울은 영하 15도를 밑도는 혹한이 오래 계속되었다. 어디서 왔는가? 봄의 대기(大氣)는 장강(長江)처럼 겨울을 밀어내고 이렇듯 따스한 세상을 만들었다. 기모 겨울바지 안쪽에 살짝 땀이 느껴진다.


	대구 달성고 동문 자전거모임 '자전거달리고'가 달렸던 자전거 코스-강원도 정선 운탄고도
대구 달성고 동문 자전거모임 '자전거달리고'가 달렸던 자전거 코스-강원도 정선 운탄고도
모임 회장 서상수 씨(법무법인 서로 대표변호사)는 "골프도 하고 등산도 해봤지만, 자전거가 최고에요. 관절에 무리가 가지 않으면서 건강에 좋고, 지구생명에 기여하는 바도 크고…. 낯선 땅, 낯선 풍경을 보면서 달리는 맛은 한 번 빠지면 계속할 수밖에 없어요."라며 자전거에 푹 빠져있다. "제일 재미있는 것 세 가지를 꼽으라면, 늦둥이 딸 키우는 재미가 첫째고, 그다음은 바람을 가르며 속도감을 즐기는 자전거죠. 셋째는, 글쎄요? 돈 버는 재미? 시륜제 음식 준비한다고 집사람에게 애교 많이 떨었어요. 하하하."라고 말하는 총무 윤성기 씨(선경건설정보 대표)는 이미 자전거가 생활이다. 

	대구 달성고 동문 자전거모임 '자전거달리고'가 달렸던 자전거 코스-임진각 평화누리공원
대구 달성고 동문 자전거모임 '자전거달리고'가 달렸던 자전거 코스-임진각 평화누리공원

<자전거달리고>는 전국 곳곳의 멋진 자전거 코스를 달린다. 서울에서 춘천까지 북한강자전거길을 달려 하룻밤 묵고, 배후령 옛길을 넘어 파로호, 화천산소길을 거쳐 다시 춘천으로 돌아오는 1박 2일 코스도 좋았다. 한여름 폭염에는 가평 용추계곡에서 물놀이 라이딩도 즐겼다. 가을이 익어갈 때는 강원도 정선 운탄고도(예전에 석탄을 운반하는 길)를 달렸다. 만항재에서 백운산, 두위봉, 질운산 옆구리를 따라 타임캡슐공원까지 이어지는 40km의 길은 국내 최고의 풍광을 자랑하는 MTB 코스다. 파주 평화누리길을 달린 후 두지리 마을에서 매운탕을 먹는 맛도 짜릿짜릿하다. 


	대구 달성고 동문 자전거모임 '자전거달리고'가 달렸던 자전거 코스-하남 미사리 갈대밭
대구 달성고 동문 자전거모임 '자전거달리고'가 달렸던 자전거 코스-하남 미사리 갈대밭

등산을 오래 했고 몸이 날렵해 자전거체력이 가장 좋은 이찬섭 씨(남광토건 경부고속도로 영천-언양 공구 현장소장)는 "지난 5년 동안 자전거로 전국 곳곳을 달렸지만 가보고 싶은 코스가 100년 치는 남은 거 같아요. 건강한 편이라 그 흔한 홍삼 한번 먹어 본 적이 없는데, 나이 80까지 자전거를 즐기려고 관절에 좋다는 글루코사민을 꼬박꼬박 챙겨 먹는다니까요. 등바람에 쾌속질주 하는 것도 좋지만, 맞바람을 뚫고 전진하는 내 허벅지의 힘을 느낄 때 <나는 살아 있다, 감사합니다> 그러죠."라며 자전거 예찬이 한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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