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 카드사의 오래된 광고가 생각나는 시간이었다. "떠나라, 낯선 곳으로! 그대 하루하루의 반복으로부터, 단 한 번도 용서할 수 없는 그대의 습관으로부터 떠나라. 빈 주먹조차 버리고 떠나라!" 고은의 시 <낯선 곳>이 생각나는 시간이었다. 지난 금요일 밤 자정, 잠실선착장 주차장에는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열심히 일한' 사람들이 '낯선 곳으로' 떠나기 위해 모이기 시작했다. 울진 소광리 금강송 군락지와 세상의 끝 왕피천을 달리기 위해서다. 반갑게 인사를 나누며 자전거 전용 전세버스에 자전거를 싣는 사람들의 표정이 한없이 밝았다. 성산대교 남단에 들러 서울 서부 회원들까지 태운 버스는 밤새 달려 석개재 정상에 도착했다. 경북 봉화군과 강원 삼척시 경계에 있는 고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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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피천에서 불남 번짱
까다로운 윗사람 입맛에 맞는 기획안을 만드느라 '전생'(前生)의 아이디어까지 모두 짜내야 했던 대기업 회사원은 이제 좀 숨을 쉴 것 같았다. '진상' 고객에게도 무조건 친절해야 하는 감정노동에 시달리던 자영업자도 이제는 자신이 '왕'이었다. 직원들 월급 줄 돈을 구하기 위해 '똥줄'이 탔던 중소기업 사장도 만세를 불렀다. 세끼 밥을 집에서 먹는 '삼식이' 남편에게 지친 주부도 오늘은 '아마존의 여왕'이 되었다. 높은 고개는 많지만 탁 트인 고개는 드물다. 장쾌한 석개재의 산세는 월화수목금, 5일 동안 꽉 막혔던 속을 뻥 뚫어주었다. 자유와 해방의 토요일 새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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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쾌한 석개재의 산세
이 번개(자전거계에서는 라이딩을 '번개'라 부르고 그 리더를 '번짱'이라 함)를 기획하고 이끈 번짱은 김중한 씨(48세, 법무법인 주원 법무실장, 닉네임 '불남')다. 나보다 두 살 젊지만 내가 존경하고 좋아하는 자전거 선배이며, 인터넷 카페 '자전거로출퇴근하는사람들'에서 오랫동안 명품 번짱으로 활약하고 있는 유명인사다. 번개 코스는 자신이 가본 길보다는 명품 코스를 새로 검색·연구·개발하여 번짱 본인도 처음 가는 길이 많고, 스스로 그 과정을 즐긴다. 그렇게 10년 동안 번개를 진행했다면 인성과 리더십은 검증이 끝났다고 봐야 한다. 인성이 '까칠'하다면 회원들이 모일 리 없고, '짱짱'한 리더십이 없다면 체력과 나이와 요구가 다양한 회원들과 함께 거칠고 힘들고 위험한 라이딩을 진행할 수가 없다. 얼굴과 몸매는 둥글둥글하고 미소는 부드러운데 리더십은 '쿨'해서 열 살 이상 훨씬 더 나이가 많은 회원도 꼼짝 못 한다. 그는 금요일 밤 자정에 출발하는 버스 번개를 2009년에 시작해서 하나의 문화로 정착시킨 주인공이기도 하다. 자전거를 즐기다 보면 전국에 너무 멋진 코스가 많아서 200살까지 살아도 모자라겠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1) 산세가 깊고 험해서 사람의 접근이 어려운 곳일수록 보존가치가 높고 값비싼 나무들이 많고, 또 그럴수록 산림관리용 임도는 잘 닦여져 있다. 차단봉이 설치되어 승용차는 못 들어가지만 자전거에는 천국의 코스다. 특히 경북 봉화, 영양, 울진 쪽 오지에 이런 관리 잘 된 임도가 많다. (2) 대부분 국도가 4차선 고속화국도로 확장되어 꼬불꼬불한 2차선 옛 도로는 이제 거의 자전거길 수준이 되었다. 옛 고갯길도 마찬가지인데 차는 그 아래로 새로 뚫린 터널을 통과하기 때문이다. (3) 삼남길, 하늘재길, 외씨버선길 등 포장도로가 개설되기 전 조상들이 다니던 옛길도 요즘 많이 발굴·복원되고 있다. 원래는 트레킹길이지만 조금만 수정하면 자전거가 달려도 손색이 없는 명품 코스가 된다. (4) 사는 사람이 몇 없어 '마을'이라고 부르기 힘든 오지에도 길과 다리와 전봇대는 모두 설치되어 있다. 자본의 논리로 본다면 말도 안 되는 일이지만, 오지 거주자뿐만 아니라 자전거 마니아를 위해 대한민국 정부가 그 많은 예산을 쓰고 친절을 베풀지 않았나 하는 착각도 하게 된다. (돈을 많이 벌어 세금을 많이 내야 당당하게 자전거를 즐길 수 있다. 멋진 코스를 달리다 보면 자꾸 미안해진다.) (5) 국토종주 및 4대강 자전거길뿐만 아니라 지방자치단체가 설치한 자전거길도 무수히 많고, 앞으로도 계속 늘어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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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안개의 몽환 - 함백산
결론적으로, 자전거 마니아는 200살까지는 살아야 한다. 그게 싫다면(또는 힘들다면) 정말 부지런히 다녀야 한다. 그런데 승용차를 이용하기엔 반드시 원점 회귀를 해야 하고, 힘든 라이딩을 마친 후 운전을 해야 한다는 게 큰 고역이다. 또 대중교통을 이용하기엔 하루가 너무 짧다. 그렇다고 1박 2일로 다니자니 가정이 있는 사람에겐 너무 이기적이다. 그래서 나온 게 금요일 밤 자정 출발 전세버스 번개다. 밤새 버스를 달리면 전국 어느 오지든 토요일 새벽에 자전거를 출발할 수 있다. 나의 자전거여행 스타일은 '낯선 땅 새벽안개'다. 여행의 핵심은 '아름다움'이 아니라 '낯섦'이고, 새벽안개 속에서 낯선 시골길을 달리는 걸 제일 좋아한다. 금요일 밤 자정에 출발하는 버스 번개의 큰 장점 중 하나는 이렇게 새벽안개의 몽환(夢幻)을 즐길 수 있다는 거다.
사실 전세버스 번개를 진행한다는 건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한 달 전 예비공지로 큰 틀의 번개 구성을 하고, 일주일 전 확정공지로 세부사항을 정한다. 특히 확정공지 시 비가 예보되었을 때가 가장 번거롭다. 우중 강행이냐, 날짜 연기냐, 취소냐, 신청자들의 의견을 물어 결정해야 하고 취소 시에는 미리 송금받은 회비를 일일이 돌려줘야 한다. '똑똑한' 필자는 번짱, 절대 안 한다. 돈 한 푼 안 생기고 힘들기만 한데 번짱을 왜 하는지 모르겠다. 내가 이 사람 불남의 '노는 법'을 인정하는 지점도 바로 여기다. 한 사람의 값어치는 '혼자'가 아니라 항상 '관계' 속에서 결정된다. 이 사람은 혼자 노는 게 아니라, 오랫동안 다른 사람 노는 걸 돕고, 노는 차원을 한 단계 높이도록 이끌었다. 노는 게 업그레이드되면 삶의 질도 업그레이드되기 마련이다. "말을 백 마리 가진 사람이라도 채찍 하나 때문에 다른 사람의 신세를 져야 할 때가 있다."는 라다크 속담이 있다(오래된 미래 : 라다크로부터 배운다, 헬레나 노르베리-호지, 녹색평론사). 나는 '말 백 마리'를 가진 사람은 전혀 아니지만, 지난 4년 동안 불남의 번개를 따라다니며 그의 '채찍'을 빌려 쓰며 늘 신세를 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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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첫 진행 번개에서 다리에 쥐가 난 초급 회원
불남 번짱이 처음으로 진행한 번개는 2007년 6월 2일 '북한강 따라 춘천 가기'였다. 지금은 북한강자전거길이 잘 닦여 있어 초급이라도 즐길 수 있는 코스가 됐지만, 당시에는 중급 코스였다. 많은 사람이 참여한 흥행 대박 번개였는데 자전거 체력을 제한하지 않은 게 함정이었다. 초급은 다리에 쥐가 나서 힘들었고 중급은 저속 주행이 더 힘들었던, 그래서 모두가 힘들었던 번개였고 그 이후에는 중급 번개만 진행하게 되었다. 그해 여름 3박 4일 자전거 캠핑을 떠났는데 비 때문에 갇힌 강원도 정선의 매력에 푹 빠져 '정선을사랑하는모임'을 결성했고, 요즘도 일 년에 몇 번은 정선 번개를 반드시 진행하고 있다. 첫 정선 캠핑 번개 때는 가리왕산 임도에서 벽파령을 넘어 평창 쪽으로 넘어갔는데 번짱 초기라 시간, 거리 계산이 서툴렀다. 점심때를 놓치고 비까지 와서 깊은 계곡에서 조난 위기까지 갔다가 시골 구멍가게에서 물에 빠진 생쥐 꼴로 사정사정하여 겨우 라면을 끓여 먹기도 했다. 그때 자색 모 회원과 사무 모 회원처럼 날씬한 사람은 식사 때를 놓치면 바로 '앵꼬'가 나고 '폭동'은 필수라는 걸 알게 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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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남 번짱과 그의 단짝 후미 쿠코치
불남 번짱 하면 그의 단짝이자 자전거계 최강 '후미' 쿠코치(닉네임)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후미'는 번개에서 뒤처진 회원이 길을 잃지 않도록 챙기고 펑크 등 자전거 트러블을 해결하는 임무를 맡는다. 당연히 자전거 체력이 월등해야 하고 미케닉 솜씨도 뛰어나야 한다. 키가 197이고 고교 때까지 농구선수였던 쿠코치는 2008년 6월 영월-정선-강릉 코스를 불남과 둘이서 이틀 동안 달리게 됐다. 아뿔싸, 그때 번짱의 마수에 걸려들어 지금까지 힘든 임무를 수행할 수밖에 없었다. 최근엔 어느 예쁜 여자 천사가 나타나 악마의 손으로부터 노총각을 구할 조짐이 보이고 있다. 8년 동안 번짱 불남 뒤에는 항상 후미 쿠코치가 있었는데 이제는 두 번에 한 번꼴로 번짱을 배신한다. 아주 바람직한 현상이다. 미남이 착하기는 참 어려운데, 세상에서 가장 선한 미소를 가졌고 회원들이 번짱 이상으로 사랑하는 후미, 쿠코치의 배신, 파이팅!
내가 불남의 번개에 처음 참석한 것은 2013년 5월 17일이다. 한계령 정상에서 출발하여 원대리 자작나무숲(지금은 자전거 출입금지), 양구, 광치령 옛길, 남북리계곡을 달리는 코스였다. 후기를 보며 불남 번짱의 명품 번개를 부러워만 하다가 처음 따라나선 번개였다. 인제38대교에서 선두 조를 놓치고 다른 길로 저 멀리 가버린 어느 회원을 쿠코치가 쏜살같이 달려가 '잡아왔던' 장면이 생각난다. 앞 자전거가 보이지 않고 갈림길을 만났을 때는 번짱과 GPS를 공유하는 후미가 곧 오므로 그 자리에 그대로 있어야 한다. 아침, 점심, 저녁 식사 모두를 원통, 양구, 홍천의 유명 맛집에서 두부전골로 먹은 게 인상적이었다. 번짱의 장난 같기도 하고, 맛 비교를 위한 합리적이고 탁월한 선택 같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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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 문치재
정선 문치재를 넘어 덕산기계곡의 거친 속살을 달리고, 성마령 옛길을 넘어 청옥산 육백마지기(고냉지 채소밭)에 오르고, 비행기재 옛길을 달렸던 번개도 기억에 남는다. 비록 가진 돈과 사회적 지위는 대한민국 1%가 아니더라도 노는 것 하나는 대한민국 0.01%라는 걸 느꼈고, 나와 회원들을 0.01%의 세계로 이끈 불남 번짱이 너무 고마웠다. 라이딩을 마친 후 정선 덕우리 대촌마을 마을회관에서 바비큐 파티를 하는데 돼지목살과 취나물 쌈 맛도 맛이지만 회관 바로 앞의 강물과 바위직벽도 끝내줬다. 눈과 입도 호강하고, 건강도 더하고, 삶의 질도 높이고, 지역경제에 조그마한 보탬도 되고, 모든 것이 흐뭇한 번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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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1) 준경묘 초입의 금강송숲 (2) 매봉산 풍력발전단지에서 필자와 중2 아들 (3) 귀네미에서 댓재 쪽으로 넘어가는 임도 (4) 귀네미 고냉지 채소밭
무엇보다 최고의 번개는 2014년 6월 14일의 번개였다. 강원도 태백 만항재에서 출발하여 함백산 정상에 오르고, 매봉산 풍력발전단지와 귀네미 고랭지 채소밭, 준경묘를 거쳐 삼척 추암해변에 이르는 110km 코스였다. 특히 중2 아들과 함께 참석하여 새벽안개 자욱한 만항재와 함백산을 맛봤는데 새벽과 아침, 안개와 이슬, 현실과 몽환이 공존하는 환상적인 경험이었다. 감격에 겨웠고 자전거를 탄 게 너무 고마웠다. 이렇게 좋은 자전거를 5천만 국민이, 아니 60억 세계인이 왜 모두 즐기지 않을까 참으로 궁금했다. 심지어 자전거를 즐기지 않는 사람은 모두 '바보'처럼 보이기까지 했다.
태조 이성계의 5대조 할아버지 묘라는 준경묘는 단연 최고였다. 묘의 풍수지리학적 의미가 어떻고, 500년 왕조를 창업한 이성계의 가계도가 어떻고, 이런 것은 솔직히 관심 없다. 아주 급한 경사라 2km 정도 거리를 자전거를 끌고 힘들게 올라갔는데 우리나라 최고의 금강송 숲이 거기 있었다. 금강산에서 자란다고 하여 금강송, 붉은빛을 띤다고 하여 적송, 미인처럼 아름답다고 하여 미인송, 시간이 지날수록 속이 단단해지고 속이 누레진다고 하여 황장목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가볍고 단단하며 방수가 잘 되고, 뒤틀림이 없으며 벌레가 잘 먹지 않아서 숭례문과 광화문 복원에 사용된 나무라고 한다. 준경묘, 거기에 경이(驚異)로운 생명이 있었고 아름다운 생명이 있었다. 거기엔 사람 삶의 경박함이 없었다. 수백 년, 수천 년 동안 땅에 뿌리를 박고 하늘로 자라난, 묵묵하고 경외(敬畏)로운 생명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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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광리계곡의 미인송
지난 주말에 갔던 소광리와 왕피천 번개에서도 이 아름다운 생명을 볼 수 있었다. 석개재 정상에서 출발하여 신나는 임도 다운을 즐긴 후 삿갓재 업힐 초입부터 훤한 적송이 늘씬한 미인의 자태로 서있었다. 소광리 금강송 군락지를 구경하고 왕피천으로 넘어갔는데 그곳은 세상의 끝, 길이 끝나는 곳이었다. 같은 왕피천의 상류인 수하계곡으로 가기 위해서는 계곡 따라서는 길이 없고, 대룡산 임도를 힘들게 오르고 길게 돌아가야만 했다. 올 들어 가장 더웠고 자외선 지수가 가장 높은 날이었다. 머리 위에서 수직으로 내리쬐는 햇살을 피할 수가 없었다. 더위에 유난히 약한 나를 비롯하여 일부 회원들은 여름 한낮의 직사광선이 제법 힘들었다.
내가 올린 후기(http://cafe.naver.com/bikecity/1834108)에는 '빡씨다'는 단골 멤버들의 댓글이 줄줄이 달렸다. "번짱님 체력이 나날이 좋아진다. 아무리 긴 업힐이라도 중간 휴식은 없다. 예정된 코스 잘라먹고 중간에 버스 부르기, 이런 거 없다. 거리는 쥐꼬리만큼 줄이고 예정된 코스는 다 탄다. 미제 모 회원 같은 여자 괴수가 등장하여, 퍼져 있는 우리에게 생동생동(生動生動)한 얼굴로 날리는 한 마디, "오늘, 힘드셨나 봐요?" 읔, 자존심에 상처 남기지 않으려면 아예 집에 두고 오시라. 호시절은 끝났다. 번짱은 이렇게 답한다. "군기 빠진 단골 OB(Old Boy)들이 오후 잠깐 더웠다고 번짱이 변했다느니, 팻바이크로 바꾸라느니 하는데 중급 번짱으로서 부끄럽습니다. 여성 3인방과 제 번개에 새로 오신 분들은 모두 멀쩡한데 OB라고 여론을 주도하면서 엄살과 꾀병을 부립니다. 아무튼 다음 달 육백산·사금산 번개는 진정한 중급 번개가 될 것이고, 얄짤없습니다." 아, 걱정된다. 나도 다음 달 번개 참석을 신청했는데 다른 사람에게 양도해야 하나? 없는 딸이 혹시 입원이라도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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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송면사무소에서 왕피천 넘어가는 길
불남 번짱은 나에게 말한다. "남의 고민을 대신 고민하는 직업이라 업무상 스트레스가 많은데 자전거만큼 여행과 운동의 재미를 주는 것이 없었어요. 그런데 아내는 자전거를 전혀 못 타고, 주말이면 독수공방하는 모습이 미안해서 자동차 캠핑을 시작했죠. 깊은 산 깊은 숲, 별빛과 짐승 소리밖에 없는 원시상태가 되면 남편은 아내를 지키려는 수컷 본능이 살아납니다. 캠핑은 부부관계를 연애시절로 회복시키는 데 많은 도움이 되죠. 아내가 너무 좋아해서 자주 갔고 저 역시 캠핑의 재미에 푹 빠져 한때 잠깐은 자전거까지 멀리하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둘 다 양립하고 있는데 앞으로는 어떻게 될지 저도 모르겠어요. 자전거의 경우, 항상 새로운 코스만을 찾아다녀서 열정을 지금까지 유지하고 있는데 전국의 멋진 곳은 거의 다녀봤습니다. 이제는 밑천이 바닥나는 상황이라 슬슬 자전거가 지겨워질 거 같아 걱정입니다. 과연 새로운 코스가 없어도 자전거 취미를 이어갈 수 있을까요?“
나는 불남 번짱에게 말한다. "멋진 경치만 찾아다닐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절경(絶景)이야 TV 보는 게 제일이죠. 돈 많은 방송사가 히말라야나 알프스가 일 년 중 가장 아름다울 때 헬기를 띄워서 고화질로 촬영한 영상을 무엇이 따라갑니까? 번개 참석자들은 절경이라서 감탄하는 게 아닙니다. 스스로 땀 흘리고 힘들게 페달을 밟았기 때문에 감탄하는 거고, 감수성은 톡, 건드리면 터질 준비가 되어 있어요. 지금처럼 한 달에 한 번은 버스 번개를 꼭 진행해 주세요. 지금까지 10년을 진행했는데, 앞으로 30년만 번개를 더 진행해 주세요. 자전거계의 역사가 될 겁니다. 고액 기부금을 내고, 양로원에서 자원봉사하는 것만 남을 돕는 게 아니잖아요. 본인도 그걸 즐기니까 알짜배기 '돕는' 게 되죠. 같은 코스면 어떻습니까? 자전거로 달리면 일 년에 한 번씩 가도 또 새로운 맛이고 또 멋지죠. 그런데 사모님은 자전거 정말 안 타신대요? 꼬실 수 없어요? 제가 아는 어느 마니아는 부부 라이더가 그렇게 부러웠답니다. 그 아내는 독서, 다도, 뜨개질, 이런 거만 좋아하고 아무리 꼬셔도 자전거는 절대 안 탄다고 하더래요. 그래서 800만원짜리 아내 자전거를 덜컥 샀대요. 돈이 아까워서라도 자전거 타겠지 하고. 어떻게 됐는지 짐작되세요? 반년 후에 중고로 팔았대요, 400만원 받고. 이런, 내가 뭔 소리를 하는 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