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최초의 스포츠 스타! 자전거 선수 ‘엄복동’

바이크조선 안수현 객원기자 이

입력 : 2015.09.01 15:35

스포츠 경기를 관람할 때만큼은 모두가 한마음이 된다. 국가대항전을 보면서 애국심을 불태우기도 하고, 응원하는 팀이나 선수가 우승하면 마치 내가 우승한 것인 양 승리의 기쁨을 느낀다. 예전 국권을 상실했던 일제강점기 암울한 시대에도 우리에게 승리의 기쁨을 안겨주고 민족적 자부심을 높여준 스포츠 스타가 있었다.


	‘조선 자전거 왕’엄복동 선수
‘조선 자전거 왕’엄복동 선수 / 유동현씨 제공

자전거 판매원으로 일했던 청년

우리나라에 자전거가 보급되기 시작한 것은 1900년대부터이다. 이 시기에 자전거 수가 급격하게 늘어나면서 자전거를 타고 거리를 활보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흔히 볼 수 있었다.

1892년 서울에서 태어난 엄복동 선수는 우리나라에 자전거가 처음 보급되던 시기에 자전거 판매상인 일미상회에서 점원으로 일하고 있었다. 자전거 수리와 배달 일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자전거에 가까워지고 자전거를 더 많이 알게 되었다.

당시 우리나라에서는 일본인들에 의해 자전거 경기가 열리곤 했는데 1913년부터는 신문사 주최로 빈번하게 자전거 경기가 개최되었다. 우리 선수들은 물론 일본인 선수들까지 초빙하여 경기는 단순히 스포츠 이상으로 민족적 경쟁심을 불러일으키는 행사였다.

그러던 중 1913년 4월 열린 ‘전조선자전차경기대회’에 엄복동 선수가 참가하면서 그동안 그가 자전거와 함께한 시간이 진가를 발휘한다.


	등록문화재 제466호 엄복동 자전거
등록문화재 제466호 엄복동 자전거 / 문화재청 홈페이지

자전거 스타의 탄생

1913년 4월 열린 ‘전조선자전차경기대회’는 경성일보와 매일신보사가 공동주최한 대회로 12일 인천, 13일 용산, 27일 평양에서 차례로 열렸다. 당시 21살의 엄복동 선수는 중고자전거로 출전했지만 당당하게 승리를 거머쥐었다.

13일 용산 경기에서 일본 선수 4명을 제치고 1위를 차지했으며, 27일 평양에서도 1위로 우승했다. 엄복동 선수는 그야말로 혜성같이 등장한 자전거 스타였다. 그전까지 친목 동호회 개념으로 진행되었던 자전거 경주대회가 그의 등장으로 관객이 몰려 하나의 스포츠 행사로 자리 잡게 되었다.

그 후 엄복동 선수는 조선을 넘어 동아시아 무대까지 진출한다. 1923년 5월 20일 중국 대련에서 열린 자전거 대회에서도 우승을 차지하며 국민 영웅이라는 칭송까지 받았다. 당시 엄복동 선수의 우승은 단순히 스포츠 경기에서의 승리를 넘어 국권을 상실한 암울한 시기에 우리 민족의 자긍심과 일체감을 높여주었다.

이처럼 어려운 시기에도 스포츠는 많은 사람을 하나로 뭉치게 하고, 또 즐거움을 선사한다. 엄복동이라는 자랑스러운 민족대표 자전거 선수가 있었기에 오늘날 국내에도 많은 이들이 즐길 수 있는 다양한 사이클 경기가 자리 잡을 수 있었다. 현재 엄복동 선수가 타던 경주용 자전거는 문화재로 등록되어 깊은 역사적 가치를 가지고 보존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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